1.서양에서의 정의
서양철학의 대표주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평등한 시민이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권리, 소득, 기회, 부, 권력, 명예 등 사람들이 원하는 희소한 것들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았다. 그는 세부적으로 정의에 대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국가와 사회가 만든 법을 지키는 준법정신과 관련 있는 ‘보편적 정의’ 그리고 개인생활 및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특수한 정의’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보편적 정의는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법을 지키며, 그 법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개인의 행태가 보편적 정의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더불어 제시되는 특수한 정의는 또다시 배분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배분적 정의는 각자의 정당한 능력에 따라 경제적인 소득과 정치권력 및 사회적 지위 등이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사회가 정의를 실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산술적 정의’로도 일컫는 시정적 정의는 균등함을 회복함으로서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가령,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경우 그 피해만큼의 보상을 해주거나 처벌을 받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정의롭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준 경우 나 또한 그 유익만큼 혜택을 받는 사회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종합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한 국가 내에서 모든 시민들이 평등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나아가 그의 정의는 분배정의에서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이한 능력, 업적, 공익에 대한 기여도인 ‘공적’을 척도로 하여 불평등을 조정하는 보상을 할 때, 그 정치 공동체는 정의로움을 실현하고 있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에 대해서 ‘법’을 잘 지켰을 때 구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절친한 친구 크라톤이 탈옥을 권유하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함께 그 제안을 거부한다. 즉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신념은, ‘정의’란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하여 만들어 낸 법을 기준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임으로 사회적 규범을 잘 지켜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사회적 공익에 부합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도시국가와 같이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사회에 한해서 법의 준수가 ‘공동선의 구현’과 관계성이 크다. 따라서 이를 예견한 소크라테스는 거대국가에서는 ‘법률의 이행’이라는 합법적인 행위가 정의를 보장해주지 못하기에 차선책으로 ‘철인(哲人)정치’를 제시했다. 모든 국민들이 정의로운 자가 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의실현은 ‘철인왕’이 사익을 구하지 않고, 국가의 선과 행복을 위해서 통치할 때 완성된다고 보았다.
벤담과 밀에 의해서 주창되어온 공리주의는 공리성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정의로운 행위로 간주하며 행복의 양과 행위의 올바름은 비례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정의는 인간의 안전과 행복에 필수적인 규칙의 집합으로 인생의 지침이 되는 절대적인 의무이며, 그 본질은 구속력 있는 의무를 함축하고 있는 공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벤담과 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먼저, 사회도덕의 근본 규범은 동등한 배려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각 개인의 권리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거나 멸시당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둘째, 사회 구조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협력을 위한 공정한 체계를 보장해야 한다. 이는 경제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한 개인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협력하는 모든 경제행위들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셋째, 개인들의 출생 시에 특별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결과는 적절한 사회적 통제를 통하여 완화시켜야 한다. 즉, 선천적인 차이에 의해서 나타나는 간극을 사회가 적절히 규제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종합하면, 정의를 개인적인 주장이나 권리를 다루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공리성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정의는 그 사회를 유지하는 하나의 규칙으로서 존재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롤즈는 어느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이익에 비하여 극단적으로 이익을 챙기거나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가 생각한 정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이익을 얻되, 가난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정의의 두 가지 원칙을 채택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제1원칙은 기본적 권리와 의무의 할당을 평등하게 요구하는 원칙이며, 제2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허용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어떤 불평등이 불운한 사람의 처지를 개선한다면, 그로 인해 소수의 사람이 더 큰 이익을 취하는 것은 정당하게 된다. 즉, 자유주의 안에서 소수자를 배려할 수 있는 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이 원칙은 소수집단이나 개인의 희생을 묵과하고 자칫 전체주의가 될 수 있는 공리주의의 원리를 경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전체적인 선을 증대시킨다고 해도 평등한 기본적 권리 자체를 침해하는 제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의의 두 원칙에서 제1원칙은 제2원칙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동양에서의 정의
공자의 정의는 ‘극기복례위인’으로 대표된다. 이 말을 풀이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仁)‘임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은 천자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형벌은 제후에서 나온다”고 하여, 당시 사회의 혼란상이 종법질서가 무너진 데서 그 원인을 보았기 때문에 ’정명사상‘을 통해 천자를 비롯한 모든 개개인이 자기 직분에 걸맞는, 다시 말해 주어진 처지와 여건에 맞추어 올바르고 곧게 행동하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나아가 『대학』에 의하면 “임금이 되어서는 인을 다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을 다하고 사람을 사귐에는 신의를 다 한다”는 말로 정치를 함에도 정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정명론에 입각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직(直)에 대해서 공자는,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을 때 자식이 아버지를 신고하는 것이 정직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의 잘못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야 말로 진정한 정직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통해서 공자가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 질서란, 사적인 도덕정감과 분리된 메마른 형식주의적 법률이 지배하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바르고 옳은’ 정치질서는 개개인 사람들의 내면적 자율성으로부터 구축되는 것이지 외부적인 정치 사회적 제도나 시스템을 통해 이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맹자에게 인·의·예·지를 일컫는 사덕(四德)은 그 자체로 정의롭고 타당한 덕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제적인 것으로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그것은 우리의 존재함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맹자가 보기에 바로 우리의 고유한 그 덕성이 우리가 따라야 할 정의이며, 그 정의로운 덕성이 밖으로 실천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맹자는 우리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적 감정, 그것이 절대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나라가 통치될 때 정의로 바로 선 왕도정치가 구현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나아가 맹자는 통치자가 나라를 정의롭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수오지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수’는 개인적인 수치심을 일컫는 말이고 ‘오’는 사회적, 타인에 대한 증오심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된다. 맹자는 ‘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사람이 반성을 통해서 개선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에, 통치자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해서 나라를 정의롭게 운영해나갈 수 있다고 예견한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수치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오’라고 보았는데, 공적 수치심 즉 잘못을 저지른 타인이나 잘못된 행위를 한 집단에 대해 분노하여 바로 잡아가는 역할을 통치자가 해야 한다고 보았다.
순자는 인간이 본래부터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한 인물로, 덕과 예를 통한 왕도정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을 통한 외부의 강제적 규제를 사용할 것을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순자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우리는 어떻게 선량해 질 수 있는가, 어떻게 사회의 질서를 실현하는가’ 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이 같은 순자의 철학적 목표는 유가철학의 일관된 궁극목표인 ‘내성의왕’이다. 이는 끊임없는 도덕수양을 통해 정의로운 삶의 세계를 실현하려는 일종의 이상이다.
순자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은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한정된 자원을 쟁탈하기 위해 분쟁이 생기고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순자가 말하는 정의는 각 사람마다 분별되는 ‘신분’을 주고,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주어 법과 규칙을 통해 나라의 안녕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 국가를 바로 세워가는 모습이라고 보았다. 물론 순자가 제시한 정의로운 사회를 차별로 형성된 사회라고 비난 할 수 있겠지만, 순자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지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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